2014년 8월 4일 월요일
[책 소개] 관부연락선
지금까지 조정래의 "태백산맥", 박경리의 "토지" 등이 대표적인 대하역사소설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얼마 전 소설가 이병주 선생의 한국 현대사를 소설의 형식으로 기록해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병주 선생이 한국의 발자크라고도 불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실상 저는 발자크(다작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의 작품을 읽은 경험이 없던 터라 이병주 선생의 소설을 접하지 못한 것도 뭐 신기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여름에는 휴가동안 읽을 겸 한길사에서 2006년에 낸 이병주 전집 30권을 구매했습니다. 이병주 선생의 대표작인 "관부연락선"부터 시작하여 "지리산", "산하", "그해 5월", "행복어사전"의 중장편소설과, 단편소설들을 모은 "소설 알렉산드리아", "마술사", "그 테러리스트를 위한 만사" 총 30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구한말을 거쳐, 일제시대, 해방, 남한단독정부수립, 625 전쟁, 이후의 정권교체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겪는 개인들이 갈등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 본인이 평소에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하지요. "역사는 산맥을 기록하고 나의 문학은 골짜기를 기록한다."
그 중에서 이병주전집의 처음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 바로 "관부연락선"이라는 작품입니다.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진주"를 배경으로 하여 일제의 지배,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서로 적대하는 해방후 상황에 대한 지식인의 고뇌와 갈등, 비극을 담담히 써내려간 소설입니다.
우리 윗세대의 어르신들의 편집증이라고 할만한 "좌익혐오"가 어디에서 근원한 것인지에 대하여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런 상황에 내가 처해 있다면 어떻게 처신을 하여야 할 것인지 매우 난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쨌든 어떤 상황에서 처한 사람의 행동이 어떤 식으로 정당화되는지 찬찬히 살펴보는 것은 좋은 간접경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다음은 관부연락선에서 제가 인상깊었던 부분입니다.
일본이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격의 행동을 한것도 사실이고 날도둑을 방불케 한 짓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영국이 인도를 먹고, 미국이 필리핀을 먹고 프랑스가 인도지나를 먹고,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먹고 그 위에 이들 열강이 지나대륙을 제각기 식민지화하려고 법석을 떨고 있는 세계 정세 속에서 일본에게만 도의적인 태도를 취하라고 요구할 순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일본의 태도를 고치게 하려면 힘으로써 할 일이지 이론으로써는 불가능한 일이다. 나쁘다고 욕을 할 수는 있다. 성패는 불문에 붙이고 반항할 수도 있다. 일한합병은 힘으로써 된 것이지 도의로써 된 것은 아니니 조선인은 일본을 책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책해야 한다.
이병주, 관부연락선 2, 한길사(2006), 22면.
더운 여름에 한번 진지하게 생각할 거리가 필요하다면, 그러나 술술 읽히는 소설속에서 쉽게 이를 접하고 싶은 분들께 추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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